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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8가지 이야기
- 칭기즈칸의 이름유래
- 칸
- 탄생
- 유년시절의 시련
- 몽골통일전쟁
- 세계 통일전쟁
- 사망
1. 칭기즈칸의 이름 유래
칭기즈칸의 이름은 성이 보르지긴이고 이름이 테무진이다.
아버지 예수 게이가 전투에서 적부 족장 죽이고 기념으로 적부 족장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2. 칸
칭호인 칭기즈칸은 위대한 칸이라는 뜻이다.
당시 몽골어로는 칭기즈칸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장 가깝다고 하고 오고타이 칸 이후로는 칭기스 카간 13세기 후반에는 칭기스 카안으로 불렸고 우리 드라마에서 거란족등이 쓰는 가한의 말은 실제 몽골에서부터 불리는 칸에서 비롯된 것이다
3. 탄생
칭기즈칸은 오늘날 몽골 동부 헨티의 아이막이 흐르는 오논 강 유역에서 족장 예수 게이와 어머니 호엘룬의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다.
4. 아버지의 사망 그리고 유년기의 시련
칭기즈칸은 아버지 타타르족의 독살로 인해 사망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타타르에 대한 원한을 크게 가집니다.
물론 아버지를 살해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중원과 아시아에서는 그 시대에 관습이 있습니다.
손님과 사자를 죽이지 마라
그 당시 칭기즈칸의 아버지 예수 게이는 아무리 적대시하는 인물이라 해도 자신은 손님이어서 헤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타타르족에게 방문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이런 생각이 잘못되고 맙니다.
평소 타타르족은 예수 게이에게 많은 원한이 있었기 때문에 칭기즈칸의 아버지 예수 게이를 술에 독을타 독살하고 맙니다.
이 때문에 칭기즈칸이 아버지의 독살 소식을 듣고, 분노도 잠시 족장이 없는 부족이 되어 도망 속에 유년시절을 보냅니다.
결국 도망치다 칭기즈칸의 부족은 9명밖에 남지 않았고, 또 다른 부족의 공격을 받아 포로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후에 탈출하여 자신이 맘에 드는 여성과 결혼을 하고 작은 부족을 형성하여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아내마저도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당하며 또 다른 시련을 맞이하게 되는데
여담으로 이때 납치당한 부인이 임신했을 때 그 아이가 주치라고 합니다.
칭기즈칸은 메리 키트족의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친아들이라 생각하며 끝까지 자신의 나라를 물려주려 했고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두고두고 출신 문제에 얽혀 갈등을 빚었다고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납치된 아내를 구출하기 위해 평소 메르키트족에 원한이 많던 부족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여 메르키트족을 쳐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이후로 칭기즈칸은 그만의 리더십을 발휘해 더욱 세력의 힘을 키워갑니다.
이비결은 혈통, 출신에 상관없이 공에 따라 보상하고 충성에 따라 상을주며 직급도 주었다고 합니다.
5. 몽골의 통일전쟁
전쟁을 4가지로 나눌 수 있는
데 몽골의 중앙 세력 전쟁, 서부 세력 전쟁, 동부 세력 전쟁, 메르키트 세력 전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강해진 부족으로 몽골 초원의 통일전쟁이 시작됩니다.
몽골고원에 중앙 최강 세력이었던 케레이트를 제압하고 바로 몽골 서부 고원의 대장 차키르 마우트 전투에서 상대를 전멸시키고
동부 동나이 만족을 쳐들어가 제기 불능의 부족을 만들고 마지막 자신의 아내를 납치했던 메르키트족을 멸망시키는데 메르키트족과 전투 중 공포에 떨던 메르키트 부하들은 전쟁이 끝나고 칭기즈칸 앞에 귀순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몽골 초원의 나머지 작은 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전쟁을 할 텐가, 복속할 것인가? 나는 기습을 하지 않는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당장 쳐들어가겠다
하여 전투도 치르지 않은 채 대거 귀순시키고 이때 큰 힘을 쓴 칭기즈칸의 큰아들
주치가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6. 몽골의 통일전쟁 이후
몽골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내부 문제가 있었는데 고구려 시대 소수림왕처럼 법과 질서를 바로잡은 것처럼 왕권강화에 큰 힘을 씁니다. 그 비결은 왕권과 신권중 신권이 왕권과 비등한 위치에 있는 주술사, 무당이 왕과 마찬가지의 권한이 있던 몽골에 무당을 죽임으로써 왕권강화가 확립됩니다.
7. 세계 정복
나라가 커지면 내부 문제가 생기기마련인데 몽골도마찬가지로 내부문제가 이것저것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돌리려 한 것도 있지만 칭기즈칸은 세계 다른 나라와 교역이 제일 먼저 하고 싶었어서 서쪽과 교역을 하려던 중 호레즘 왕국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
길을 비키지 않으면 내가 직접 길을 트겠다.
그리고 호레즘 왕국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후 탕구르족 이세운 서하를 공격하여 몽골의 특징인 엄청 난기 동력과, 공성전을 이용하여 서 하정 벌을 한 후에 금나라 원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금나라는 작은 나라도 아니고 금나라 앞쪽에 와서 작전을 세우던 중 그들에게 거란족이 지원하겠다고 자진해서 지원을 합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들어보니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들이 과거에 거란족에게 많은 괴롭힘으로 피해를 받았던 것에 대해 조상의 원한을 갚고 싶다며 부탁을 합니다.
칸 저희의 복수를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하여 금나라의 전쟁 단 두 번 만에 금나라 군사 40만을 격파하고 금나라 수도를 점령하고 금나라를 복속시킵니다.
서요원 정 서요원 정부터는 이제 칭기즈칸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전쟁이 시작되는데 서요는 거란족의 마지막 제국이며 칭기즈칸이 금나라 정벌때 전투력이 상당한 거란족을 보며 그들을 견제하다가 결국 그들을 복속시키며
호레즘 원정이 진행됩니다.
호레즘 원정은 중동의 새로운 강자 호레즘과 교역을 했는데 교역을 할 때마다 몽골인들이 죽거나 물건을 빼앗기는 일이 생겨서 이구 실로 인해 원정을 떠나는데 이 당시 호레즘도 몽골과 버금가는 대국이었으나, 몽골과는 어느 정도 차이는 존재했습니다.
몽골은 통일전쟁이 끝나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안정화가 되있던 상태였고, 호레즘은 통일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호레즘에 이를 갈던 다른 부족들이 그들의 약점, 그들의 지리적 이점 등을 몽골에게 알려주며 몽골은 엄청 난속 도로 호레즘 세력의 핵심도시를 격파하며 호레즘 왕국은 결국 사기가 떨어져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8. 칸의 사망
서하정 벌 중 고령의 나이에 낙마사고가 일어나는데 이낙 마사고로 인해 몇 가지 염증이 큰 병이 되고 투병 중에 우연히 꿈을 꾸게 되는데 악몽이었습니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들어 후계자를 정하고 서하를 공격하고 멸망시키고 돌아오던 중 사망하였고, 칭기즈칸이 죽은 뒤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충실히 받아들이면서 영토를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