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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인생 이야기

korea informations. 2021. 12. 5. 21:44

 

 

 

 

 

이건희의 인생 이야기

  • 학창 시절
  • 회장이되기까지
  • 여담

 

태생

먼저 1942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북 대구에서 이병철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과는 달리 셋째 이건희는 부모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자란 편이 아녔기에 3살 때까지 할머니 댁에서 자랐으며 이후 초등학교 때쯤은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녀서 부모와 같이 자란 시간은 얼마 없을 정도로 외롭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환경 때문인지 이건희는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며,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며,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자동차, 레슬링, 전자제품이었는데 나중에 아래에서 세 가지 스토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창 시절

이건희가 4학년이던 때 동갑인 전 한겨레 신문 사장 권근술이 이건희와 친하게 지낼 때 느낀 감정은 부럽다였습니다. 부잣집 도련님이라 그런지 집에 신기한 장난감이 많이 있어서 부러웠다. 서로 친하게 지내더라도 장난을 많이 치는 성격이 아니어서 크게 특징이 있던 성격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아주 조용조용했던 스타일인 것을 알 수 있죠.

 

이후 서울 사대부고를 진학하고 이건희는 독특한 사고를 많이했다고 합니다. 동창인 홍사덕은 이건희에게 이런말을 많이들었다고합니다. 미국에서 차관을 많이들여와야 미국의 이해관계때문에 우리안보가 튼튼해진다는 말을 곧잘했다고하고, 또는 제 2한강교가 개통되었을때 이건희는 제2한강교는 통일이후 중요한 역할을 할다리인데 다리 경간을 좀더 넓혀도 되었을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고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 아주 관대하게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홍사덕에게 이건희는 니 일본어 좀 배워놔라 니 정도면 두어 달 정도만 해도 웬만큼 할 거다.라는 말을 듣고 홍사덕은 반일감정이 많을 때여서 그저 소리를 듣고 그냥 흘렸다고 합니다. 

 

또한 학창 시절에 성적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실제 성적은 부잣집 아들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하고, 학과 공부에 별 뜻 없이 무슨 생각을 그리하냐는 질문을 하면 나는 사람 공부를 제일 많이 한다, 라는 약간 4차원적인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 보는 눈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던 이건희에게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삼성에 한임원이 이병철의 눈밖에 나서 쫓겨날 상황에 있던 일이 있었는데 고등학생인 이건희가 아버지를 찾아가 그 사람은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이병철은 두말하지 않고 그 임원을 다시 불러들여 내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병철은 스스로 인사관계에 대해 철저하다고 했지만 이건희가 보는 눈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고 그때부터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건희는 스포츠 레슬링 광이였습니다. 사대부고 시절 레슬링부에서 활동을 했으며 레슬링을 한다는 소식에 이병철과 이건희 어머니는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레슬링 실력이 아주 수준급이었는데 전국대회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덕분에 이건희의 상체는 아주 단단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이건희가 레슬링을 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건희의 어머니는 교장을 찾아가 아들을 레슬링부에서 빼 달라고 하여 레슬링을 그만두고 결국 일본 유학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레슬링을 하며 배운 이건희의 깨달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마인드를길럿고, 목표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찾을 수 있었으며, 상대를 공략해 이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라는 참맛을 알게 되었고, 레슬링을 하면서 공통적인 룰 원칙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회장의 자리에 앉기까지

회장의 자리에 가기에는 아주 먼 이야기였던 이건희였지만 이병철은 큰아들과 둘 재 아들을 후계자에서 제외시키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첫째 이맹희와 둘째 아들 이창희가 청와대에 아버지 이병철을 고발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왕자의 난이 되면서 결국 이병철은 첫째 아들 이맹희와 둘째 이창희를 후계자에서 제외시키게 되고 셋째 이건희에게 눈을 돌리게 됩니다. 

사실 셋째 이건희가 실제 능력면에서도 우수하기도 했습니다. 

 

이건희의 천재성을 이야기하 자면이건희는 관심 있는 분야 관련 서적을 먼저 구매를 한 후에 그것을 외우다 싶을 정도로 읽고 공부하며, 실제로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며 관련 부품의 종류별로 다 외우며, 연구를 많이 했고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고 독학하는 천재성이 삼성의 어떤 엔지니어보다 똑똑한 사람으로 각인됩니다. 

 

실제 이건희는 퇴근 후에 전자제품을 사 와서 모두 분해하고 조립하고를 반복하며 독학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후에 웬만한 전자제품은 다꽤고있을정도로 전문가가 되었고, 외국 부품 국산부품 하나하나 기능의 차이를 살피며 품질격차가 있을 시에는 담당 계열사 기술담당 임원을 불러 그것을 고쳐오라고 직접 진두 지회 할 정도로 맡은 분야 열심히 하였다고 하며, 이것을 이병철은 알아봅니다. 

 

회장 자리에 앉은 이건희는 선언합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봐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라고 취임을 하게 되죠

 

초일류기업으로 종지부를 찍은 회의가 바로 프랑크푸르트 회의입니다. 바꿔라 출근부 찍지 마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든 생각이 있으면 출근 안 해도 된다. 6개월 밤새 일하고 6개월 놀아도 좋다. 논다고 평가하지 말고 논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놀아라, 뛸사람은뛰고 쉴 사람은 쉬어라 쉬는 사람은 뛰는사람의 발목을잡지말아라, 쉬는사람은 쉬었다가 다시 따라가면 된다. 뛰는 사람은 쉬는 사람을 다시 뛸 수 있도록 격려해라, 변화하려는 사람 말리지 말고 잠깐 쉬려는 사람 내버려 둬라, 라는 말을 했고 이건희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항상 위기라는 것에 대해 크게 방점을 찍었습니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매출이 높아도 위기다 매출이 떨어질 수 있다. 매출이 낮더라도 매출이 낮다고 걱정하고,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임원들과 일했고, 실제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회장이 잘못하거나 틀렸으면 그게 아니라 이겁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왜 없어? 사장 비서실장이 회장한테 지적을 안 하는데 이떻게 과장 부장이 이사, 상무한테 지적을 하겠느냐, 이것부터 고치자 라며 회사 내부도 뜯어고치려 혁신을 강조했습니다. 

 

 

 

여담으로

1

이건희는 반려견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삼성 임원단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보신탕을 먹는 사람이 이으면 명단 좀 적어와, 명단이 제출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라고 물으니 강아지를 한 마리씩 선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직접 강아지를 키워보면 보신탕 먹을 생각이 다시는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

이건희는 유년시절 영화광이었다고 합니다. 학교가 끝나고 주말에 아무 스케줄이 없었던 날에는 하루 종일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영화를 볼 때에도 같은 영화를 여러번 보는 습관이있는데 이런한 점은 같은영화를 다각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실제 감동의 입장 실제 배우의 입장에서 몰입해서 보는 것처럼 다각적으로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훗날에 회사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3

자동차광

실제 포르셰를 구매하러갔다가 포르쉐 6대를 고르고 계약금을 내지 않고, 계약사인만 하고 집으로 가던 중에 이건희를 몰라본 신입직원 딜러가 이건희를 잡고 계약금을 주지 않았다고 하자, 이건희는 비서에게 내 지갑 가져와라고 하며 3억을 그 자리에서 일시불로 즉납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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