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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싸움실력 정치 깡패 사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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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씨름을 굉장히 잘했다고 하며 어릴 적부터 씨름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악력이 정말 대단했다고 합니다.악수를 할 때 사람들이 기피할 정도라고 합니다.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힘이 굉장히 셌고, 마을이나 지역에서 씨름대회를 열었다 하면 상품으로 걸린 황소는모두 이정재가 가져갔다고 합니다.

싸움실력

사람들은 이정재가 그래도 동대문사단의 대장인데 최강이지 않겠냐는 말을 하지만목도 두껍고, 턱도 튼튼해 보여서 쓰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절대 스라소니 그리고 김두한에 비하면 겸상 못한다고 합니다.
실제 부하들의 증언에 따르면 못한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며1대 1 싸움을 한 것을 봤다는 살마은 몇 없을 정도로 싸움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기도 하고 힘이 굉장히 세서 보통 상대를 집어던지거나 넘어뜨려서 가격했다고 합니다.씨름 베이스인 이정재는 실제로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이유는 지금 시대와 비교했을 때 최근 씨름 출신들은 유도 출신 격투선수들과는 다르게 성공한 선수들이 많이 없는 것 같은데요지금과 비교하면 씨름이 인기가 없어지자 씨름선수들은 격투기로 많이 넘어가곤 했는데 그중 가장 성공한 사람이 최홍만입니다.최홍만의 전성기 때는 엄청났지만 그러나 요즘은 성적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이것으로 종합해볼 때 싸움을 못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싸움을 못하는데 어떻게 두목이 되나 할 수 있지만 이정재는 리더십이 굉장히 좋았다고 합니다. 

 

조직에 막내 정도 되는 사람이 사고를 쳐서 입건된 경우에도, 경찰과, 검찰청에 가서 직접 허리를 숙이며 빼내 올 정도로, 조직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고 하며, 아래 부하는 3000여 명 정도 됐다고 합니다

동대문사단

정리 또는 한 줄 요동 대문 사단의 규모는 상인들이 무려 12000여 명이며, 종로 4가에서 6가까지  70000만 평 규모에 2900여 점포를 가진

거대한 규모의 집단이었습니다.

상인들에게 10배에서 많게는 100배까지 남겼고,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동대문은 이런 자금으로 현재 시세 100억 원가 량하는 3층 건물 을지어 옥상에서 부하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체육관을 지었다고 합니다.

정치깡패

이승만 대통령의 당 자유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야당 인사들에 대한 집회방해 그리고 이기붕의 자유당 취임 공작 등 각종 테러를 도맡다가, 

김두한이 똥물사건을 일으키고, 김두한도 저렇게 국회의원을 하는데 난들 못하겠나, 욕심은 끝이 없고, 결국 이천 지방에서 민의원 출마를 계획합니다.

그런데 결국 자유당에서 좋지 않은 눈총을 받게 됩니다.

 

사형

정권이 바뀌고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바뀐 정부의 이미지 쇄신뿐만 아니라, 깡패들이 정치하는 세상이 된 것을 갈아엎기 위해

조직폭력배 척결을 시행합니다. 정권으로 인해 동대문사단의 임원들은 잡혀 들어가고 이후

혁명재판소에서 범죄단체 수괴로 인정되고, 사형을 선고받았는데도 여유로웠다고 합니다.

왜냐면 이미 돈으로 뇌물을 많이 줘놨고, 경찰 인맥도 상당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44세 젊은 나이에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교수형으로 죽기 전에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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