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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인생 이야기
- 유년시절
- 중학교 시절
- 고등학교 시절
- 결혼 스토리
오늘 소개할 내용
오늘은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변호사도 하며, 경기도지사까지 지낸 지금은 대선후보에 올라있는 이재명에 대한 인생 이야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이재명도 앞서 이야기했던 홍준표와 마찬가지로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 집안 어릴 때부터 공장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그래서 더 간절했을 것 같던 힘들었을 것 같던 그의 인생 이야기 시작해보겠습니다. 아래에는 홍준표 이야기를 올려놓겠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21.12.19 - [분류 전체보기] - 홍준표의 인생 이야기
유년시절
5남 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고, 그의 부친은 원래 경찰관과 교사를 했으나, 노름에 빠져, 다 날려먹고, 엄청 가난하게 농사를 하던 때 이재명이 태어났는데, 정말 가난하게 살아서인
지, 집이 일반 가정집이 아닌 산골짜기에서 집을 짓고 살았는데,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농사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결석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재명은 실제 태어난 날과 시간 들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너무 어린 시절 가난한 형편으로 어머니는 그의 생일을 잊어버렸고, 학교 등록이 의무였던 대여서 이때서야 필요함을 느끼고 점쟁이를 찾아가 생일과 날짜를 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 이재명은 어머니가 생일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진짜 생일을 모른다고 했으며, 출생신고를 늦게 하여 아예 적당히 좋은 날을 출생일로 잡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 보니, 농사일을 도와야 해서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겨서 일찍 가게 되면 학교 선생님에게 채벌을 당하고,
늦게 등교해서 선생님에게 채벌을 당했고, 또 그런 시기에 살았으니, 선생님이 되면 학생들을 때릴 수 있으니 좋은 직업인 것 같다. 나의 꿈은 교사가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이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를 갈 무렵 아버지가 밭으로 일구어 조금씩 모은 돈을 또 노름에 탕진을 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를 갑니다. 이때도 비정상적인 시절을 보냈는데, 중학교 때부터 공장을 다니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 대신 공장을 다니게 되는데
첫 번째 직장은 염산과 황동으로 만드는 목걸이 공장이었고, 두 번째 직장은 땜을 하는 공장이었는데 꾀 돈이 되나 싶었으나,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고 도망을 가여, 월급은 떼이며, 실직자가 되었고, 3번째 공장에 취직했을 때에는 동마 고무라는 곳으로 옮기게 되는데, 손가락을 다치는 첫 산업재해를 당하게 되며, 아직 손가락 속에 빼내지 못한 고무파편이 들어있다고 하며,
네 번째 직장은 대양 실업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프레스에 손목이 눌러 관절이 으스러지는 두 번째 산업재해를 당하며, 프레스에 이런 사고는 늘 있는 일이다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많았을 때라, 사장은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이재명의 부모를 다독이며, 이런 말에 병원도 찾지 않고 아픈 팔로 계속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에 2차 성징이 오면서 갑자기 키가 많이 크게 되었고, 이때 손목과 팔의 뼈도 같이 자라면서 부러진 뼈가 다른 뼈의 성장 속도를 이겨 내지 못해 팔이 비틀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장애 6급 판정을 받으며, 군입대는 면제가 됩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대신 운동장에서 뛰 노는 것이 아닌 공장에서 시간을 보낸 이재명은 공장에 작업반장에게 구타를 당하게 되고 이때 하도 폭행을 당해 태권도를 배우러 간 적도 있다고 하며, 저렇게 작업반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 고졸인 작업반장의 학력을 알게 되며, 검정고시공부를 하게 되었고, 가족들은 공장일 대신 공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벌어서 공부하는 것이었기에 막지는 않았고, 이 당시 공장일을 마치고 공부를 하던 그는 우울증이 찾아와, 2번의 자살시도를 하는데 첫 번째는 연탄불을 피워 자살시도를 했으나 연탄불이 저절로 꺼졌고, 2번째 자살시도에는 둘째형 이재영이 구해줬으면, 마지막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구하러 갔으나, 이를 눈치챈 약사가 수면제 대신 소화제를 대신 주어서 죽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힘든 시련과, 일부러 그에게만 시련을 주는 것만 같이 생각이 들던 이재명은 스스로 죽으려 해도 되지 않고, 그 이후
좋은 일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되고,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대학생 시절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진학을 하게 된 것은 순수 장학금과,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생활비 지원 덕분에 학교를 충분히다닐숭있게 되었고, 어머니는 이재명에게 축하한다며 사준 옷이 있는데 제복을 사주었다고 합니다. 70년대 중반에는 이미 대학교 제복은 사라진 상태였지만, 어머니가 선물로 사준 옷이고, 이재명도 마음에 들었어서, 혼자만 제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 당시 이재명은 중고등학교를 못 다녀 봐서 그런지 엄청 좋았고, 어릴 적 학창 시절에 못 입어 본교복을 입어 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사법시험 준비
이재명은 장애 6급 온 가족이 공장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힘들게 살고, 학교도 법학과에 나오며, 배운 사람에 위치가 되니, 못 배운 사람의 입장이 이해가 되고, 그러므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이 들며, 전공을 살려 사법고시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후 이재명은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개천에서 용이 나고 그는 변호사로 성남지역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의외로 사법시험에 성적이 좋아서, 판검사로 임용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으나, 모두 거부하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재명이 성적이 좋지 않아 변호사로 생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결혼생활
변호사 개업 이후에 부
인인 김혜경과 결혼하게 되는데, 하루는 이제명은 1989년 8월에 만나는 사람과 난 결혼하겠다, 라는 원칙을 세우며, 5명의를 순서대로 소개팅을 받았는데,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여성까지 다 만나지 않고, 3번째였던 김혜경을 보고 이 여자다 싶어서 뒤에 두 명의 여성은 보지 않고, 미리 정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프러포즈를 소년 시절 공장에 다닐 때 일기장과 다른 선물을 같이 줬는데 정말 소년 공때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아 실제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있는 사람이 맞는지 사기꾼이 아닌지 알아봤다고 합니다.
여담
2015년 스티브 유 유승준과 썰전을 나눈 적 있는데 유승준은 이재면 또한 군대를 가지 않았다며, 비판한 경우가 나오며, 이를 계기로 이재명은 장애 6급 카드를 보여주고, 소년 공시 절 다친 그의 팔을 보여주어 유승준을 역관광 시킨 사건이 있습니다.
또한 유기견에 관심이 많고, 개식용 반대에 대해 주장을 많이 했고,
성소수자를 존중해 야한다 하며,
달변로유명하며, 말의 시작에 여러분이라는 글을 많이 넣고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한다.
, 노무현과 같은 화법을 자주사용한다고합니다. 노빠꾸라고 불리고 돌려말하지않고, 솔직하게 말하는스타일이 노무현과같은 화법이라고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