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신격호의 인생이야기
신격호는 오늘의 롯데의 창업주이자, 초대회장인 신격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1세대 재벌 총수에는 정주영 회장, 이병철, 신격호 등이 있는데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은 아래 게시물을 참조해주세요~
2021.09.22 - [사건 사고 이야기] - 정주영 놀라운 이야기 5가지
2021.10.17 - [분류 전체보기] - 이병철의 8가지 이야기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볼까요?
일본 사람인가? 한국사람인가?
일본 사람이 아니냐는 논란이 많은데 이유는 일본말도 굉장히 유창하며,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근무를 하고, 짝수 달에는 일본에서 근무를 하며 롯데그룹을 경영하여서 일본에서는 일본인으로 활동하고, 한국에서는 한국인으로 살아 이중국적자가 아니냐라는 의심도 많았지만 신격호는 경남 울산 삼동면 둔기리에서 태어난 진짜 한국인 맞습니다.
신격호는 빈농인 신진수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서 가난한 집안으로 인해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었죠,
그러던 중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울산농업 보습 학교에 진학한 후에, 1938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일을 하게 되는데 이때
해봤던 일이 양털깎이와 양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매우 박봉이어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중 첫 번째 부인 노순화와 사이에서 태어난 신영자를 낳게 되고, 이제 입이 3으로 늘어난 신격호는 더욱더 책임감을 느끼며,
진짜 성공해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가족과 조국을 걸고 나성 공해서 돌아오겠다.라고 선언을 하고
무작정 일본으로 밀항하게 됩니다.
일본 도착 이후 인생의 반전
일본에 도착한 신격호는 우유배달을 하며 벌어들인 일본어 책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자취방을 구해 생활하며, 야간에 와세다 실업학교 고등부에 입학하여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이렇게 생활하던 중에 신격호에게 큰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1944년 신격호의 성실함 그의 끈기를 알아본 하나 미츠라는 사람이 5만 엔이라는 거금을 빌려주면서 사업을 해보라고 후원해주었고, 이 돈으로 밥솥을 만드는 공장을 차렸는데 잘 운영되는 듯하였으나,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망하게 되죠,
그러 고난 후에 한 번 더 하나 미츠라는 사람이 다시 지원을 해주어 커팅 오일공장을 운영하게됩니다. 그런데 커팅오일 공장마저도,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망하게 되고, 이에 지친 하나 미츠라는 사람도 이젠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 대신 천천히 자금을 갚아도 된다 하여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신격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됩니다.고향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돈을 빌려줬던 하나 미츠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하나 미츠에게 돈을 갚기로 생각을 하고세 번째 사업을 시작합니다. 수중에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와, 솥단지 하나뿐인데 솥단지 하나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던 찰나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부누를 녹여 팔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비누, 세탁비누, 포마드 크림 등을 만드는 사업을시작헤 꾀나 잘된 사업 덕분에 하나 미츠에게 빌린 돈을 1년 반 만에 다 갚고 집까지 선물해줍니다.
네 번째 사업
이렇게 빌린 돈을 갚고 남은 돈을 모아 다른 사업에 투자하려 했는데 그 당시 유행이었던 껌, 껌을 한번 팔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신격호는 시장에 있는 껌을 판껌, 풍선껌을 종류별로 모두 구입해 껌의 각각을 장단점등을 파악한 후 장점만을 모아서 만들어진 껌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는데 이때 세운 회사가 롯데입니다.
이 당시 일본의 롯데가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껌 사업이 그렇게 잘되지는 않았는데 껌의 선두주자 회사인 하리스가 장악하고 있을 때여서 풍선껌, 판껌에대해 연구를 많이 했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까 하며, 무의식 중에 티브이를 보다, 광고를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광고업체에 찾아가 홍보를 적극 활용해 껌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이어서 스위스 초콜릿 장인 막스 브락스까지 스카우트한 후에 가나초콜릿으로 초콜릿에 큰 획을 긋습니다.
이렇게 제과에 대해 큰 성공을 하고 일본에서 자리를 잡고 있을 때 한국에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한국 진출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에서 제과사업을 일으켜 성공한 신격호 회장에게 정부가 외자도입법에 따라 지원을 해줄 테니 한국에도 투자하라고 권유했고, 이에 신격호는 한국에서 사업을 일으켜 확장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당시 해태제과, 크라운제과, 동양제과가 장악하고 있던 한국 제과시장에 새로운 다크호스로 자리 잡게 됩니다.
롯데의 영업정지
잘 나가던 롯데가 갑자기 영업정지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런데 이 사건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1970년 서울시에서 시행한 대대적인 불량식품단속에 롯데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되며 영업정지가 됩니다.
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사람은 인격이 있어야 하고 국가는 국가의 국격이 있어야 한다. 라며 국빈이 왔는데 어찌 머무를 숙소가 없는가, 다른 나라와 견줄 정도가 되려면, 우리도 고급 호텔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고급 호텔을 지으려 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많은 기업들이 꺼려하는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신격호 회장을 부릅니다. 내가 롯데의 영업정지를 풀어주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호텔사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 하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롯데의 영업정지가 다 풀리며, 이 약속 이후 서울 도시계획국장이었던 손정목 교수는 롯데재벌이 탄생한 날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고비를 넘긴 롯데제과는 급격한 매출 성장을 이루며, 일본에서 성공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70년대 제과시장에 최강자가 되는데 이후에 지금의 칠성사이다인 칠성 한미 음료를 인수하고 삼강산업을 인수하며 이후에 롯데유업까지 세워 식품사업을 모조리 완성시킵니다.
왕자의 난
이렇게 한국에서 일본에서 사업을 키워가던 중 신격호 회장의 자식들도 어느덧 성인이 되며, 가정을 꾸리는 장년이 되고, 아버지의 회사에 일하던 아들들은 회사 승계 문제에서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첫째 신동주 그리고 둘째 신동빈에게 한국 롯데 일본롯데를 하나씩 각각 나누어주려 했으나,경영승계를 하려면 분할을 해야 하고, 일본롯데 한국 롯데를 분할하려면 1조 원이 넘는 돈이 들어 결국 신격호가 경영권을 갖고 2명이 아들이 회장인 형태인 이상한 회사 구조가 되어서 상황을 이어가던 중
신격호는 평소 첫째 신동주보다 둘째 신동빈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 고생각 들어 첫째 큰아들 신동주가 모든 보직에서 해임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밀려난 신동주가 고령의 아버지를 데리고 반란이 일어나는데
첫째 신동주가 아버지 신격호를 데리고 일본의 롯데홀딩스의 이사들을 모두 해임하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아주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그런데 둘째 신동빈 회장은 즉시 임시이사회를 열어 정식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 규정이라 선언하며 아버지 신격호를 롯데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해임시킴과동시에 명예회장으로 바꾸었고, 소송까지 진행하며 먼지 싸움으로 진행됩니다.
결국 둘째 신동빈은 한국 롯데 계열사 주식들을 사모으며 지분싸움에서 승리하고 둘째 신동빈이 롯데 회장의 자리에 앉게 되며 신격호의 시대는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