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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의 8가지 이야기
이병철은 정주영 회장과 마찬가지로 창업주이자 삼성초 대회장입니다.
오늘 이야기해볼 내용은
-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 어린 시절 어떻게 보냈는지
- 사업 시작
- 이병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것
- 취미생활
- 삼성의 고질병
첫 번째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어릴 적이 야기를 비교하자면 정주영 현대 회장과 마찬가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정주영과 달리 이병철 회장은 유에서
유를 만든 타입입니다. 이병철은 할아버지부터 만석꾼이어서 유복한 집의 어린이였습니다.
만석꾼이란 곡식 만섬 정도를 수확할만한 땅을 가진 대지주 즉 큰 부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한 카더라에 따르면, 이병철의 원래 본명은 이병길인데 이병철로 개명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게시물을 참조해주세요
2021.09.22 - [사건 사고 이야기] - 정주영 놀라운 이야기 5가지
정주영 놀라운 이야기 5가지
정주영의 놀라운 이야기 5가지 정주영은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회장과 함께 1세대 기업인이며, 정치인까지 하기도 하는 동생과 아들들이 모두 회장의 자리에 있고 대한민국 최 고부 자였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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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어린 시절 어떻게 보냈는지
서울에서 초중고를 보낸 후, 일본 와세다 대학교를 유학을 갑니다. 유학시절 대학교 동기들과 함께 도박에 손을 대며, 날밤을 까는 일이 많아졌는데 도박을 하고 돈을 다 잃고,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난 도대체 뭘 하고 살까? 독립운동을 할까? 일본 공무원이 될까? 사업을 할까?
후에 다시 한번 더 도박을 하게 됩니다. 사업을 선택하며, 이선택은 승부수가 됩니다.
세 번째
사업 시작
사업은 처음 초기 자금 아버지에게 지원받은 쌀 300 석분의 토지를 기반으로 사업을 1936년 마산에서 정미소를 창업하게 되는데 정미소에서 배달까지 하며 이에 확장하여 운수업까지 사업을 확장하게 되는데
이후에 1938년 조홍제, 허정구와 함께 삼성상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러고 시간이 흐른 뒤 승승장구하던 이병철은 시대적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이병철은 서울이 점령당하자 모든 것을 잃고 피난길에 오릅니다.
부산에 도착하여 가진 돈도 몇 푼과,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절박함에 좋은 아이디어가 문득 들게 됩니다. 전쟁으로 널브러진 쇳덩어리를 모아 고철을 일본에 팔고 일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중국에서 설탕과 비료를 수입해서 국내 시작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다시 삼성물산이라는 회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모체가 됩니다.
네 번째
반도체 사업 시작
솔직하게 말해 시작은 이병철 이하였지만 완성은 이건희 회장이 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병철은 반도체 사업을 72세의 나이에 시작하게 되는데, 이전에 일본 박사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반도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반 도체가
지금의 양자컴퓨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양자컴퓨터는 아래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자컴퓨터란 반도체가 아닌 원자를 기억소자로 활 영하여 슈퍼컴퓨터 한계를 뛰어넘는 첨단 미래형 컴퓨터라고 하는데 양자 컴퓨터는 현재 상용화가 되지 않은 단계이고 저당 시 반도체 사업은 상용화가 되던 시절이어서 우리나라에게 없던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계기가 미국 실리콘벨리들이 일하는 것을 보며 반도체 사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강박관념
이병철은 엄청난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자신이 정해진 스케줄대로 무조건 이행해야 하며, 업무를 보다가 시계 도보 지도 않고 펜을 내려놓는 순간이 12시 30분 삼성의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스케줄을 엄격하게 지켰다고 합니다.
여섯 번째
사람 욕심
조직이 사람을 움직이는 기업은 망하지만, 사람이 조직을 움직이는 기업은 발전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병철은 내생에 80%는 인재를 뽑고 관리하는데 쏟아 보낸 것 같다 라고 말할 정도로 사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로 삼성물산이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마지막 면접에 관상학자 까지 데려와 채용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렇게 뽑은 직원이 잘되어서 진급하고 그 사람이 잘되어 괜찮은 사람이 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등용된 인재에 대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교육에 힘썼다고 합니다.
회사란,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조직이고, 인간이 만들어지면 인간이 다시 회사를 만들어지는 조직
그만큼 사람에 대해 욕심이 많았고 인재가 삼성의 재산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재양성에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일곱 번째
미술품 덕후
이병철은 미술품 수집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호암미술관에 있거나 현재 한남동 리움미술관으로 옮겨진 어마어마한 국보급 문화재들이 많은데 이문 화재들은 이병철 회장이 직접 사모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카더라에 의하면 이러한 문화재들이 불법 도굴품이라는 말이 있으나, 카더라는 카더라일 뿐 직접 보지 못했으니 알 수는 없습니다.
또한 며느리 홍라희에게 골동품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는데, 그 당시 대학 등록비가 5만 원이던 시절에 10만 원을 주며 10만 원어치 골동품을 사 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사립대학교 기준 450 정도라고 할 때 두배 정도이면 1000만 원어치 골동품을 사 오라 할 정도로 미술품에 집착을 많이 했습니다.
여덟 번째
삼성의 고질병
삼성의 고질병은 폐가 좋지 않은데 이병철은 의외로 애연가였습니다. 폐암이 발병해서 10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며, 77세의 나이에 별세했습니다. 여담으로 큰아들인 이맹희도 폐암으로 세상을 떠 낫고, 이건희 회장 역시 폐질환과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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