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건 사고 이야기

정주영 놀라운 이야기 5가지

korea informations. 2021. 9. 22. 15:59

 

 

 

 

 

정주영의 놀라운 이야기 5가지

정주영은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회장과 함께 1세대 기업인이며, 정치인까지 하기도 하는 동생과 아들들이 모두 회장의 자리에 있고 대한민국 최 고부 자였던 것을 감안하여 왕회장이라고 불립니다. 

첫 번째

정주영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꿈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옛날 시절에는 직업 끝에 "사" 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갖는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꿈이었습니다. 정주영 또한 이광수의 소설 '흙'을 읽고 자신도 변호사가 되어 억울함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실제로 사법고시에 2번이 나떨어졌다고 합니다. 반면에 김태촌은 억울한 일을 무력을 행사하여 다르게 이름을 날렸습니다. 김태촌의 다른 이야기는 아래에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20.11.13 - [사건 사고 이야기] - 김태촌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범서방파 64세 인생에 30년을 감옥에서 보낸 조직폭력배 두목 김태촌, 아버지는 경찰관, 어머니는 그 당시 중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경찰관 자식 밑에서 깡패 두목이 어떻게 해서 나왔을까

500002.tistory.com

두 번째 가출 왕

첫 번째 가출 어릴 때 정주영은 가출을 4번이나 했을 정도로 사춘기 시절을 강하게 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가출은 함경북도 청진으로 갔었습니다. 하지만 차비가 없어서 원산 근처의 고원 군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차비를 벌기 위해 철도공사가 한창이어서 막노동을 하며 어릴 적부터 건설현장에서 뼈대를 키웁니다. 

 

두 번째 가출은 금강산으로 가출했으나 그 당시 금강산은 산새가 험하고 일 구하는 것도 힘들어 가진돈마저 사기를 당하며 결국 아버지에게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가출은 그 당시 재산은 가축을 키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때여서 집에 소를 판돈 70원을 훔쳐서 서울로 가서 부기 학원에 등록했으나 또다시 아버지에게 잡혀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네 번째 가출은 소학교 친구 중에 부농의 아들이었던 오인보와 같이 가출했으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만난 오인보는 정주영과 함께 현대자동차공업사의 초창기 창립멤버가 됩니다. 

세 번째 현대는 신용

현대는 옛날부터 고질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당장에 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기간 안에 기적처럼 이루어낸다"라는 프레임을 가 진현 대는 지금도 협력업체에게 하는 행동은 예전과 다름없습니다. 과거 정주영은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이라 말하며 말도 안 되는 시간과 자금이 부족한 어려운 공사를 따내어 이것저것 해보던 정주영은 친척과 친동생의 기와집까지 팔아가면서 공사를 완성해내면서까지 신용을 중시 여겨 지금의 현대와 정주영의 이름을 세상에 알려냅니다. 

네 번째 88년 올림픽

88 올림픽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전두환이라고 생각하시지만 88 올림픽을 유치한 일등공신으로는 정주영 회장이 유명합니다. 

그 당시 88 올림픽의 일화는 2002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공동주최냐, 일본 주최하냐라는 논쟁이 많았는데 당시 경쟁도시는 일본의 나고야였습니다. 

 

나고야 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는 비싼 시계를 각국 ioc 위원들 숙소에 방문해 골고루 나누어주며 일반적인 선물공세로 홍보를 했고, 

정주영 측은 ioc위원들이 머무는 숙소에 꽃바구니만을 돌리면서 홍보를 했습니다. 

정주영 측 관계자들은 승산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막상 다음날 뚜껑을 열어보니 각국 ioc위원들이 시계를 받은 것보다 꽃을 받은 것에 대해서 더 색다르고 흥미롭게 받아들여 각국 ioc위원들이 한국 측에 관심을 갖게 되자 일본 측은 크게 당황하게 됩니다.

 

 

 

결국 정주영은 물질보다는 정성을 중시하게 만들었고 정주영만의 방식으로 과감하게 밀어붙여, 결국 최종 투표에서는 서울이 나고야를 52-27로 서울이 나고야를 누르고 88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구두쇠

부자는 흔히 구두쇠라고 합니다. 정주영 구두쇠 이야기를 하기 앞서 정주영 아버지도 엄청난 구두쇠였음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정주영은 농부가 되기 싫어 집을 떠나 가출한 적이 있는데 아버지에게 설득당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창경 원한 번 가고 싶습니다. 

창경원은 일제강점기 때 창경궁 안에 동식물원을 만들어서 지금으로 생각하면 서울대공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어서 정주영의 아버지는 동물원의 입장료가 아까웠던 나머지 정주영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시골에서 호랑이 많이 봤다, 너 혼자 보라! 는 말에 정주영은 아버지와 같이 가지 않으면 보지 않겠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여 결국 부자간에 처음으로 동물원에 가보았다고 합니다.

 

정주영은 대기업 회장답지 않게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았고, 흔히 말하는 구멍 난 양말을 기워서 신고 다니는 구두쇠, 또는 젊은 시절 서울에서 단칸방에 세를 들어 살 시절 나무장작 값을 아끼기 위해 하루 한 끼만 따뜻한 쌀밥을 해 먹고 다음날 아침밥은 전날에 지었던 찬밥을 그냥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생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배 도안 부른데 뭐하러 그 연기 뻑뻑 피워서 돈을 쓰느냐?"라고 말하면서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경쟁자

김우중

이후 경쟁자 중에 여럿 있지만 대우자동차 회장 김우중이 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대우자동차를 설립하며 지금의 쉐보레로 불리는 대우자동차가 엄청났었는데 이 당시 대우자동차는 에어컨이 빵빵한 자동차 회사로 알려져 여름철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 있는 대우자동차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병철

이병철은 정주영보다 5살이 많습니다. 정주영은 농부의 아들인데 비해 이병철은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국내 최대 재벌인 현대와 삼성은 재계 대결이 1,2 위 자리를 항상 경쟁하는구도 가 형성되었고, 지금은 삼성의 신세계백화점, 현대의 현대백화점, 중공업으로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자동차계열에는 삼성자동차, 지금은 르노에 인수되었습니다. 현대는 현대자동차가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