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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회관사건

서울 강남한복판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는것이 믿겨지시나요?

조직 소개

맘보파(피해측)

사건 1986년 8월 14일 오후 10시 30분 서진회관 17호실에서 목포출신 조직폭력배인 맘보파 조직원들이 광복절 특사로 출소하는 조직원을 축하하는자리로 7명이모여 술을마시고있었고, 출소하는 조직원은 교통사고를 내고 석방하는 조직원의이름은 고용수이고 당시 28세이다.

주목해야할 인물중하나가 조원섭인데 그시대에 소문난 칼잡이이며, 실전 싸움을 아주잘했고, 복싱실력은 당시 헤비급 복싱선수급이였다고합니다. 모르는사람들이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맘보파는 주변가게를 봐주고 돈을 벌어 먹고사는식으로 생계를유지해갔으며, 청부폭력 등을 일삼으며 살았는데 평소 목포파에대해 학생들동아리정도로 심부름하는꼬마들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했습니다.

 

목포파(가해측)

옆방 16호실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출신으로 자칭 목포파라고하는 8명이 술을 마시고있었다. 목포파의 특징은 지금은 용인대학교이지만 그당시에는 용인유도대학으로 불렸던당시였는데 유도대학 출신 선후배간 으로 조직된 이름있는조직은 아니였다. 

사건초반

맘보파에서 출소를 축하하고 있던 맘보파는 서빙을하던 웨이터에게 불만이 있었습니다. 

맘보파 조원섭 : "웨이터야 우리 룸이 너무작으니조금더 큰룸으로 바꿔주면안되나?"

웨이터 : 손님이 많아 남는룸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리가 생기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맘보파 조원섭" 어이 삼촌아 태도가 왜그렇냐 뭐가 불만이있냐 "

조원섭은 웨이터를 폭행을하고맙니다. 이렇게되자 다른조직원들은 축하하는자리인데 이러지말자 때리지말고 보내줍시다하면서 말립니다. 이렇게 저지를시키고 종업원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목포파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던 한명이 웨이터를 보고 너왜우냐? 누가너를때렸냐? 자초지종을 말해봐라. "내가 가만두지않을것이다."

참고로 목포파가 봐주던 가게였고 이렇게 가게를 봐준다는 의미는 가게를 지켜줌으로써, 그에해당하는 보디가드비용을 서진회관에서 목포파에게 지급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목포파가 가만히있으면 그렇게 봐주던 가게의 수입도없어지는꼴이난다. 그래서 목포파는 평소에 자신들을 조직으로생각하지도않고 하찮은 꼬마라고 생각하는것에 대해 원래 불만이 많았던터라 웨이터에게 바로 묻는다.

목포파 : "몇호실이냐!"(너희들은 오늘 잘됬다. 너희들은 내구역에 허락도없이 와서 곱게 술마시고 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와서 행패를 부려?)

웨이터 : "17호실입니다." 

하는 찰나에 목포파 와 조원섭은 맞닥들이게된다.

사건중반

중반부터는 화장실을가던 조원섭 김동술, 성길과 마주치게된다. 아무리 술에 취한 조원섭일지라도 평소 무섭게 생각하고 있던터라 이들은 무서움에 떨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서움에 떨고있다가 조원섭이 시비를걸고 머리를때리고 비틀거리며 시비를 걸자

목포파 김동술과, 성길은 가지고있던 횟칼을 꺼내들었고, 조원섭은 어디찌를려고? 찌를거면 찔러봐!를 하는순간 팔과 허벅지를 찔리고 돌아갑니다. 이후 조원섭이 속해있던 맘보파는 사태의 심각성을느낍니다.   

목포파에서는 그래도 자신들보다 실전경험도많고 자신들보다 쎄다고 생각하는 조직은 확실하게 알고있었던 터라. 지금부터 더이상 술은 먹지않는다. 저기 맘보파에는 조원섭이있지만 이미 조원섭은 힘을쓸수가없다. 그대로 우리차에있는 연장들을챙겨 맘보파가 도망가기전에 쳐들어간다. 횟칼, 쇠방망이, 등 수많은무기를들고 자신들보다 더취해있다는것을 안 목포파는 17호실로 들어가게된다. 

사건후반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었지만 이모든일은 10분안에 모든것이 이뤄진다. 목포파의 작전대로 17호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조원섭부터 단체로 난자후 나머지들을 제압하는데 조원섭 포함 4명이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3명은 중상을 입게됩니다. 17호실을 피바다를만든 이들은 경찰을 피해 축늘어진 조원섭을포함한 4명의 시체를 등에엎고 자신들의 차에 싣습니다. 차량 2대로 나눠 시체를 트렁크에 2명씩 나눠싣었는데

인근 병원으로 갔습니다. 맘보파 조원섭, 송경식, 장경수, 고용수 이네명을 병원에 수술실앞, 화장실앞에 교통사고 환자요하고 던져놓고 떠났다고합니다. 부검결과 이 4명의 시체에 칼로찔린 자상이 40여회가 넘었다고합니다.

자수

주범인 장진석과 김동술은 자수하지않고 범행에가담하지않은 조직원들이 자수하게되어 사건의 혼선을주고 이들은 이후 저지른 범죄가아닌것을 알았고 이후 산속에서 은신중이던 김동술과, 장진석은 체포됩니다.

기자들앞에서의거만함

장진석과, 김동술은 심정이어떻냐는 질문에 이제 모두 다끝났다. 어머니에게 불효를저지른거같아 미안스럽다. 뭐가 그래 묻고싶은것이 많느냐, 구경났냐 우리둘잡으러오는데 전경들을다동원해서 둘러싸고있는줄알았다. 형사들만있는줄알았으면 싸워볼만했는데 아쉽다. 라고, 거만함을 놓지않고 취재를 했다.

 

 

 

 

취조실안에서

기자들앞에서는 쌘척하고 기세등등하던모습은 없어지고 검사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벌벌떨었다고, 합니다.

사형집행

김동술, 고금석은 사형, 김승길과, 장진석은 무기징역, 그리고 나머지조직원들에게는 각 가담 정도에따라 그에맞는형이 내려졌다.

이사건이후바뀐점

조폭들에게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됩니다. 이권다툼 조직간의 세력다툼등 유흥주점사업에서 합법으로 사업을 바꾸고 먹고살며 지금은 금융, 건설, 부동산등으로 종목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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