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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사건

 

80년대생부터는 모두 아실 겁니다. 당시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개구리 사건, 당시 아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개구리소년 사건 지금 바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 내용 : 대구에 사는 동네 아이들끼리 아침에 뒷동산인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채취하러 올라간 후 점심이 되어도 집으로 오지 않고, 밤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실종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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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

1991년 3월 26일 화요일 이날은 시군구청의 의원을 뽑는 선거일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입니다. 공휴일이어서 동네 친구들 형들 삼삼오오 모여 아침 먹고 모여서 같이 놀자고 합니다. 당시 어릴 적 우리들은 경찰과 도둑, 잠자리 잡기, 올챙이 잡기, 바위를 뒤집어 달팽이를 잡기, 술래잡기, 컴퓨터 게임이 없던 그 시절엔 주로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같이 추억을 쌓으며 노는 것이 다반사였죠. 이 친구들은 아침 9시경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채취하러 가기로 합니다. 

중반부 

아침아홉시경 원래 6명이 한 멤 버였었는데 한 명의 친구는 늦잠을 자고 늦게일어나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배가 고파서 그런데 아침만 먹고 같이 올라가겠다" 어디로 가면 되냐는 말에

실종된 개구리 아이들은 "와룡산 입구 쪽으로와 같이 가자!"라는 말을 남겼고 6명 중 1명의 친구 아침밥을 먹고 간친 구는 와룡산 입구에 친구들이 없었고 부모님의 말에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말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후반부

대구 와룡산은 실제 해발 299.6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진달래의 군락지이며, 상리봉 전망대가 있다고 합니다. 이 친구들은 이산에 도롱뇽의 알을 채취 하러 갔으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 부모님들은 용돈을 주지 않아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오기 일수였는데 점심때에는 실종된 부모님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친구들 집에서 먹고 놀고 있는 거구나 라고 말이죠.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게 되자, 실종된 부모님들은 저녁 7시 30분경 경찰에 실종신고를 합니다. 

 

 

 

 

 

경찰의 대응 그리고 직접 찾아 나선 부모님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부모님들은 실종신고를 접수를 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당시 경찰의 초기대응은 늦었습니다. 이유는 그날 1991년 3 월 26일은 선거일이어서 경찰서 인력을 파견 도보 낸 터라 많은 인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찰과 실종된 아이의 부모님들은 직접 산속에 플래시 하나를 들고 산에 수색을 합니다.

부모님들은 오직 목소리와 플래시를 들고 큰소리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이아이들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대로 끝인 건가? 이후 아이들을 봤다고 하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목격자의 증언

첫 번째 목격자 조호연의 친형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친형은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와룡산 주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생과 동네 아이들을 만나 너네 어디 가는 거냐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우리는 산에 도롱뇽 알을 채취하러 간다. 

두 번째 목격자 동네 아주머니

선거날이었던 이웃주민인 동네 아주머니는 선거를 빨리하고 오기 위해 아침 9시경 학교 방향으로 가던 길에 아이들이 와룡산 근처에서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세 번째 목격자, 함승훈 군

1993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함승훈 군의 증언을 다룬 적이 있다. 와룡산에는 다른 동네에서도 도롱뇽의 알을 채취하러 갔었는데 그중 한 명이 동네형들과 멀어지고 길을 잃어산에 혼자 점심까지 남게 되었는데 이때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노태우 대통령 사건 수사 지시

노태우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고, 좋지 않은 일도 많이 일어났었는데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뉴스와 언론에 떠들썩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대해 직접 지시를 내립니다. 전국의 전의경 경찰, 군인을 차출 동원하여 수색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수사의 어려움 협박 전화

실제 유괴범이라고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전화 한 통이 오게 되는데 경찰은 언론에 알리지 않습니다.

유괴범은 "돈 400만 원을 와룡산 정상에 가져다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을 살려주지 않겠다."라고 해서 아이들을 위해 와룡산 정상에 돈을 가져다 놓았지만 유괴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수많은 전화가 알려질 것에 대비해 경찰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허위제보 허위신고 등 수사의 어려움을 겪어 더욱 사람을 살리는 골든타임을 놓쳐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섞여 개구리소년사건은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아이들의 유골 발견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하게 됩니다. 2002년 9월 26일 와룡산 도토리를 줍던 시민이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하고 신고합니다. 이아이들의 유골 옆에 옷과 신발 등은 전부 이아이들의 것이었고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이야기에는 사건의 무기를 무엇으로 해골에 이런 상처를 내었는지에 대해 심오하게 다뤘습니다.

사진과 같은 용접용 망치를 이용해 머리를 가격했다고 하는데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의 범인

가설 1 개구리소년의 시체 주변에 탄피가 있었고 탄피가 있었다는 것은 총을 소지한 군인?

실제 와룡산 근처 군부대가 있긴 하지만 군부대의 오발로 인해 아이들이 맞아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었지만 군부대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선거일이어서 군인도 휴일엔 선거하고 훈련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격장이 근처에 있지만 와룡산으로 사격을 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범인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고, 미국의 힉키 교수는 이 사건은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사건이다. 범인은 1명이고 연이어 범행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 당시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에 대한 것이 만연히 알려지지 않아 몰랐지만 범인은 사이코패스임이 분명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부검기록

 

부검기록에 따르면  나이가 많은 우철원 군에 두개골에 찍힌 상흔은 25군데나 발견되는데 범인은 우철원보다 나이가 더 많고 힘이 센 사람으로 느껴지고 외상흔적이 보이지 않는 찬인 군과 호연 군에게는 목졸림으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공소시효

 

 

사건의 공소시효는 끝이 났지만, 실종된 아이들의 부모님의 마음속에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고, 진범이 언제가되었든 빠른 시일 내에 잡혔음 하는 바람입니다.

 

자료출처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네이버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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